[별건곤](別乾坤) (1929년 10월호)
(주: 별건곤사가 요청한 "경성에 와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란 제목의 앙케이트에 대한 답문임)

나도 시골사람으로 서울에 와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하지마는 나는 언제나 근본적으로 시골사람이 서울 오는 것을 불찬성한다. 시골 사람이라도 무슨 특별한 일이라든지 주의가 있어서 서울을 구경한다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고 다만 풍조에 딸려서 외형의 번화한 것이라든지 사치한 것만 취하여 구경한다면 그야말로 맹자단청 구경 이상으로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허영심 사치심만 늘어서 여간한 악영향을 입지 않을 것이다.
실제에 시골사람들이 도회에 유혹되어 자꾸 도회로 집중하려 하고 또 근래에는 농촌의 생활곤란, 기타 어떠한 일시적 기회로 인하여 일개월에 몇천 몇만의 시골사람들이 서울로 온대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런데 기왕 서울을 오게 되면 나는 이러한 말을 부탁하고 싶다. 즉 경성은 도로의 개통, 시가의 즐비, 건축의 굉대 그러한 모든 시설이 완비하고 외면이 번화한 반면에는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빈민굴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금 조선에 있어서 어느 지방에 빈민굴이 없는 곳이 없지마는 서울의 빈민처럼 참혹한 현상은 없을 것이다.
진고개와 종로같은 번화지를 보는 동시에 신당리 공덕리 같은 빈민굴을 보아 어찌하면 저런 사람들도 잘 살게 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또 다른 시설보다도 조선인의 일반 교육시설을 잘 살펴서 교육의 필요를 확신하는 동시에 자제를 많이 학교에 보내서 유위인물을 많이 양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