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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세와 조선의 장래

[동아일보] (1925년 8월28일~9월6일)

      (주 : 이 논문은 고하가 하와이 범태평양 민족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한 후 20세기가 진전함에 따라 펼쳐질 세계의 대세와 우리나라의 장래에 관하여 심사숙고한 글이다. 이 논문은 근대 한국 명논설 66편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1967년 [신동아]지 신년호 별책부록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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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조선사람이다. 그러므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새가 수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도저히 조선을 떠나서는 또한 조선을 잊어버리고서는 일각일초라도 설 수가 없고 살 수가 없다. 이리하여 자거나 깨거나 듣거나 보거나, 잊으려 하여도 잊을 수 없는 것이 현하 우리 동포의 심리적 상태인가 한다. 그러면 조선을 위하여 웃을 사람도 우리 동포요, 또한 조선을 위하여 곡할 사람도 우리 형제일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조선 과거의 흥체적 사실을 추구하며 또한 조선이 세계 구성의 일부인 이상에는, 현하의 세계와 조선과의 영향 관계의 현상을 그대로 냉정하고 엄숙하게 관찰하여서 조선민족의 당래의 운로를 개척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차절한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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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조선의 장래를 논구하는데 있어서는 외부적으로 중요한 영향 파동이 관계를 가진 세계적 대세도 요긴한 재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욱 중차대한 관계를 포함한 것은 내부적으로 조선민족 자체의 과거 역사상 흥체성쇠의 인과관계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과거 사천년간 흥체성쇠의 사실을 개괄적으로 일론하려고 하는 바이다.
    물론 과거의 조선에는 표면적으로 관찰하면 단군대황조의 등극조판하신 이후로 기자·기준의 조선도 있었고 위만의 조선도 있었고 또한 진한, 변한, 마한과 고구려, 신라, 백제의 분열된 조선도 있었다. 이리하여 이를 통일조직하였던 신라의 조선과 또한 이를 통일계승하여 온 고려의 조선과 이조의 조선이 있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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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사천년을 통하여 역사적 변천과 정치적 흥체가 반복무상하였다. 그러나 언제든지 조선인의 조선이라는 관념은 없어져 본 일이 없었으며, 또한 실체적으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은 엄숙한 사실이다. 환언하면 삼국의 분열은 그 당시 정치 당로자의 분열이며 신라·고려·이조의 멸망도 또한 그 당시의 왕위교대의 흥망변천에 불과하였던 것은 소소한 사실이 아닌가. 어째 그러냐 하면, 역대 왕조의 변천 흥체에 따라서 만일 조선이 멸망하였다 하면, 어찌하여 사천년래로 조선민족의 문화가 의연히 보전할 수 있었으며, 또한 조선민족의 혈통이 엄연히 존재할 수가 있는가. 경히 일례를 거하면,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이 경쟁 교체하여 미국의 정권을 접수상전하는 동안에 혹은 공화당이 승리를 득하며 혹은 민주당이 실패에 귀하여도 누구든지 결코 미국 자체의 동요흥체로는 보지 아니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의미에서 역대 왕조 자체의 정치적 흥망에 불과한 것이고 결코 조선민족 자체의 전체적 멸망, 근본적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이에서 굳게 단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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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전란에서 역대 왕조의 흥폐는 정권쟁투의 수단방법에 불과하였고, 조선민족 전체의 문화 및 생활에 들어서는 직접의 변화와 영향이 없었던 것을 설파하였다. 이것은 역대 왕조가 항상 민족생활의 토대에서, 또는 민중문화의 발전에서 정권을 운용하며 경륜을 시설하는 것보다, 왕가 자체의 발전 또는 정권 유지의 목표에서 정치적 이상이 국한되었던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역대 왕조의 흥폐에 대하여 그 당시 왕조의 특수적 은총을 받는 특권계급을 제하여 놓고는 일반적 민중은 그다지 직접으로 생활상 이해의 감수성이 희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어떤 왕조에 대하여는 그 포학무도의 정치적 변혁을 기대하였던 적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대적 사실에도 특히 오인의 주의를 촉하는 것은 과거 무상한 정치적 변혁에 언제든지 이민족의 세력으로 오랜 동안 간섭 혹은 통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거절하여온 사실이다. 이것은 원래부터 조선민족의 혈통이 극히 순수하고 또한 언어와 예속이 이민족의 그것에 비하여 항상 탁월우수하였던 관계인가 한다. 회고하여 보라. 이세민의 정예로도, 수양광의 강포로도, 혹은 안시성의 척영이 되며 혹은 청천강의 고혼이 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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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최근의 정치변혁의 사실은 여하한가. 반도의 정권이 이조에 귀한 이후 임진·병자의 양대전역이 있었다. 이리하여 민력의 피폐가 극도에 달하였었다. 그러나 이를 개혁제도할 거완의 정치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어니와 세계의 대세는 제국주의의 발흥과 동양항로의 발견으로 인하여 서력동점의 대세를 순치하였었다. 이리하여 은사국의 조선은 점차로 세계적 조선이 되어가며 폐쇄하였던 반도는 졸지에 열강의 각축장으로 화하려 하는 형세가 현저하였었다. 이러한 기운을 간파하고 사천년래의 신기축을 전개하여 일대변혁을 시하려 하였던 것이 거금 삼십년전의 갑신정변이었다. 그러나 시운이 부지한지라 우리의 선각 김옥균 일파는 천추의 한을 포하고 필경 수방이역에서 불귀의 객이 된 것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이 상신치 아니한가. 그러나 이것도 또한 극소수의 각성으로써 사천년래의 굳어온 민족 전체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일시에 개혁하려 하였던 것이니, 어찌 무리가 아니랴. 이후의 형세는 여하하였던가. 계속된 이조의 학정과 팽배한 서세의 동점은, 혹은 종교로, 혹은 상선으로 도천의 세를 시하였다. 이리하여 동학당을 중심으로 한 민중적 반란이 기하였었다.
    그러나 이 또한 쇄국·양이의 구사상에서 그 운동의 배태가 생한 결과 한갖 일청전역의 대사단을 야기하였을 뿐이오, 민중 자체에 대하여는 하등의 수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 곧 갑오동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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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그 후 형세는 여하하였는가.
    누천년간 피활적 지위에서 복종과 압제에 굳어온 민족의 두뇌는 신문화에 대한 각성이 지둔할 뿐 아니라, 소위 도솔의범의 지위에 처한 귀족계급은 사리와 당쟁이 분골침닉한 결과 사천년래의 조전부수하여 온 정치적 권력은 일로전역의 종언으로 인하여 이민족의 수중에 이전하게 되었다. 이 곧 경술의 합병이 아닌가. 그러나 이에서 당약한담이 된 조선민중은 갱히 현대의 문명의 대하여 경이의 안을 개한 동시에 민족적의식을 또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이 곧 1919년 3·1운동의 발단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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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일구일구년의 삼·일운동은 조선민족에 대하여 사천년 이래 윤회 반복하여 오던 동양적 생활양식을 정신상으로나 문화상으로나 정치상으로나, 근본적으로 민중적으로, 파괴 건설하려 하는 내재적 생명의 폭발이었다. 그러므로 조선력사에 있어서 처음 보는 운동인만큼 그 의의가 심장하고 그 관계와 영향이 중차대한 것도 물론일 것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과거 기천년간의 역사상으로만 표현된 기다의 개혁과 전란이 있었으나, 그 내용과 실질에 있어서는 소수계급의 정권 쟁탈의 변혁이 아니면 존주양이의 사상에서 배태되며 출발하였던 것은 불무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삼·일운동의 일건에 지하여는 그 내용과 형식을 일변하여 적어도 사상의 근저가 세계적 대여론인 민족적 자존과 인류적 공영의 정의 인도의 관념하에서 전국적으로도 민중적으로 도검리 철쇄간에서도 의연히 입하며 태연히 동하였던 것은 어찌 조선민족의 혁신운동 사상에 일대기적이 아니며 일대위관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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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이러한 기적 위관을 연출케 한 그 원인이 나변에 재할까. 이곳 일론을 시코자 하는 바이다. 물론 조선의 혁신운동은 그 기원을 갑신정란에서 구하는 것이 정당한 경로일 것이다. 어찌 그러냐 하면 갑신정란의 사상적 근저가 재래의 정권여탈과 존주양이적 사상과는 그 범주를 달리하여 적어도 현대문명을 긍정하여서 민족적 복리를 기도하는 점에서 기인된 까닭이라 한다.
    물론 그 운동의 토대가 극소수계급의 각성에 출발하였으므로, 상유의 공을 수치 못한 것은 천추의 한사라 할지라도, 그 개국존민의 대리상에 지하여는 암벽으로부터 낙하된 물체가 그 목적지에 달하기 전까지는 저지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래 삼십여년을 통하여 일파가 만파가 되며, 사어가 여론이 되며, 혹은 독립협회가 되며, 혹은 자강회가 되며, 혹은 대한협회가 되며, 혹은 학교와 학회가 되어 일진일퇴 일축일장의 무수한 변동과 허다한 시련을 경과한 것이 과거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더욱이 조선민족의 급격한 충동을 기케 하고 가속의 각성을 촉진케 하였던 것은 경술의 대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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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하여 조선민족은 회심반성의 기회를 작하였으며, 또한 구문화의 반항을 시하였었다. 촌숙이 학교로 변하며, 도련님이 생도로 변하며, 이래 십년간을 사회적 세포인 개성의 변화를 야기하게 되었다. 또한 동시에 사내총독의 구문화군의 무력적 반항사상의 전환책으로 성히 동화주의의 신식교육을 여행하였었다. 그러나 사내의 무리한 동화정책은 사천년동안의 훈련된 민족적 정신을 파양하기에 너무나 미약할 뿐만아니라 도리어 민족적 감정을 날격하는데 있어서 그 공효가 막대하였던 것을 이에 기탄없이 단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그 소위 동화정책은 도리어 민족의식을 환기하는 일방으로 일반적으로 보급된 신식교육은 신문명의 긍정과 민중적 각성을 비상하게 촉진하였었다. 그러면 무수한 세포의 변화가 기하는 동시에 전체의 변동이 생하는 것과 같이 사회조직의 토대가 되는 허다한 개성이 근본적으로 개혁 각성이 되는 동시에 어찌 전체 사회의 대변혁이 없으랴. 이 곧 삼·일운동의 기원이다. 혹은 삼·일운동을 미국 선교사의 교사라고도 하며 혹은 천도교일파의 선동이라 하나, 이것은 조선민족의 정신과 또한 조선사회의 사정을 몰각한 단견자류의 예어에 불과한 것이오, 그 실은 조선민족의 내재적 생명이 세계적 신문화에 접촉되어 폭발된 일대 각성의 소리인 것을 단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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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삼십년간을 통관하면 민중적 운동을 삼기로 분할 수 있으니, 제일기는 종교적 배타운동의 갑오의 동란이요, 제이기는 정치적 근왕사상의 의병운동이요, 제삼기는 민족자유의 삼·일운동이다. 그러나 종교적 배타운동과 정치적 근왕사상이 실제상으로 실패에 귀하였을 뿐만아니라 사상상으로도 민중의 여론을 작치 못하고 계속적 승리를 득치 못한 것은 그 정치적 이상과 논리적 가치가 도저히 현대의 신사조에 대조하여 그 사상적 근저와 토대가 너무도 박약하고 배치되었던 까닭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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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민족 자유의 삼·일운동만은 전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그 동기와 사상이 내적으로 민족적 복리를 기도하는 점에서 외적으로 세계적 사조에 순응하는 점에서 설령 일시적으로 완벽의 공을 수치 못하였다 할지라도 조선민족의 양심적 발동으로 보아서 또한 세계인류의 사상상 공명으로 보아서 확실히 도덕적 승리인 것은 불무할 사실이다. 그러면 현하의 정태는 여하한가.
    과거를 회고하면 조선사회가 갑신의 혁신운동을 필두로 하여 십년만큼 사회적 대변동을 야기케 하는 것은 본래의 상례이다. 시사하여 보라. 갑신정란에서 갑오동란까지, 갑오동란에서 갑진·을사의 의거에서 경술의 합방까지, 경술의 합방에서 기말의 삼·일운동까지, 마치 예정적 행동과 같이 사회적 변동이 발생된 것이 소연한 사실이 아니냐. 이것은 결코 이상야릇한 운명의 마술이 아니라 현대의 어느 사회와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구시대에서 신시대에로 추이과도하는 도정에 있어서 항견례유한 사실인가 한다.
    보라, 일본의 유신시대에 존왕양이의 논쟁과 서남충돌의 전란이 어찌하여 생겼으며, 미국에는 독립전쟁 후에도 왜 남북전쟁이 있었으며 현하의 중국에 어찌하여 단비의 난과 혁명의 전과 봉·직의 쟁이 계속 불절하는가를. 그 이유는 구세력의 파양와 신문화 수립의 접촉점에 처한 사회의 불가피할 현상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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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물며 반만년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동양 전국의 추요지에 처한, 아니 구아미 삼대륙의 세계 도로의 중심점에 있는 조선민족의 사회가 정치상으로나, 문화상으로나, 사상상으로나, 경제상으로나, 시시각각으로 외세의 자극을 받고 내부의 충동을 야기함이랴. 원래 조선민족에게는 고유 특수한 선입적 문화가 있었다. 이리하여 한참 동안 신구취사의 고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신구취사의 번민시대에는 자주적 변혁보다 타력적 변동이 빈수하였었다. 이 곧 일청·일로의 양대전역이 그것이며 경술의 대변도 그것이다.
    그러나 조선민족은 일구일구년의 삼·일운동을 신기축으로 하여 민중적으로 새 기운을 탔고 새빛을 보았다. 그 표증으로, 첫째는 교육적 각성이요 둘째는 경제적 의식이다.
    보라. 삼·일운동 이후로 아무리 벽향궁촌의 농로취온이라 할지라도 자제교육에 대한 갈앙추구의 열이 여하히 항진하였으며, 또한 재래의 역사적 감정으로만 훈련되었던 민족운동은, 그 내용을 일변하여 경제적 의식 곧 생활의 토대 위에서 그 근저를 발견하게 된 것은 확실히 일대 진보인 것을 단언하는 바이다. 이에서 과거 경술사변 이래의 십년간 보통교육의 보급으로 삼·일사건의 자주적 대변동을 야기하였다 하면 이로부터 삼·사년을 불과하여 또한 사회조직의 일대 변동이 발생될 것도 선지탁견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나 예측할 바가 아닌가. 그 이유는 민중의 지식정도가 더욱 진보될수록 더욱 보급될수록 사회조직의 변화가 더욱 빈수하여 갈 것은 진화의 법칙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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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인은 전란에서 조선민족의 내부적 진화로 인한 사회조직의 자연적 변화를 논하였다. 그러나 조선반도가 세계구성의 일부분이며, 또한 조선민족이 인류 전체의 일부분인 이상에는 세계대세의 추이가 직접 간접으로 조선사회에 파급이 될 것은 물론이며, 따라서 조선사회의 변동도 세계대세의 추이에 막대한 영향이 될 것도 상상할 수 있다. 회고컨대 조선문제로 인하여 발단한 서남전쟁은 일본정계의 변혁을 여하히 야기하였으며 또한 조선문제로 인하여 돌발된 일청·일로의 양대전역이 동양전체의 풍운과 국제정국의 파란을 여하히 야기하였는가.
    이리하여 근인에 있어서는 청조의 패망을 초하였고, 원인에 있어서는 슬라브족의 수모로 인하여 구주대전의 발단을 작치 아니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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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있어서도 미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문제가 여하히 조선민족의 신흥기분을 조장하였으며, 또한 이로 인하여 일본정계의 시청을 여하히 용동케 하였는가. 이로 보면 조선문제는 동양의 난관이며 세계의 논점인 것은 물론일 것이다.
    오인은 이에서 경히 세계대세의 추이상으로 관찰한 조선문제의 경과를 먼저 일론코자 하는 바이다. 원래 조선문제는 전란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조선민족 자체가 현대문명에 대한 이해와 각성이 지둔한 점에서 무참한 희생을 당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과거의 형세를 추구하여 보면 우리 민족 자체의 책임뿐만 아닌 것도 상상할 수가 있다. 시사하여보라. 동양 전체의 지리적 관계로 보아서 조선반도는 중·일 양국간에 개재한 중립지대가 아니냐. 그러므로 대륙으로부터 수입된 구주의 문명은 중국 고유문화의 저항으로 인하여 전파의 역이 박약하였고, 해양으로부터 유출된 미대륙의 문화도 일본의 유신대업을 촉진하였을 뿐이 아닌가. 이리하여 그 중간에 개재한 우리 민족은 도연히 쇄국의 장몽에 처하였던 것이다. 만일 그 당시의 일본의 위정가로 하여금 동양 전국의 백년대계에 착안하고 또한 선진자의 책임을 자각하여서 성심성의로 동양 각민족의 공존공영을 도하게 되였던들 결코 조선과 중국에 금일과 같은 무참한 현상이 없을 뿐만아니라 일본자체도 금일과 같은 세계적고립의 위지에 입치 하니하였을 것은 물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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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이래 일본의 동양 전국에 대한 태도와 정책은 여하하였던가. 두말할 것 없이 일·영동맹을 국제외교의 중추로 하여 동양평화의 보장이라는 미명하에서 문화상으로 은총이 수심한 조선의 합병을 단행하고, 일보를 진하여 영국과의 협조하에서 중국의 이권을 쌍분롱단하려 하던 것이 과거의 정책상 대본이 아니었던가. 이리하여 수수산목이 되어있던 미국으로 하여금 기회균등과 문호개방주의의 제창을 하게 되지 아니하였더냐. 만일 현하 미국의 배일적 감정을 해부하여 본다면 심각한 인상과 동기는 그 당시 일본의 방약무인한 침략정책이 그 누를 급치 아니하였는가 한다.
    물론 그 당시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일본에만 한하였던 것은 아니다. 십구세기로부터 이십세기 벽두에 이르기까지는 과연 침략적 제국주의의 전성시대이었던 것도 불무할 사실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어서 열강의 임의적 분할이 단행되었었고, 태평양에 있어서 군도의 쟁탈병합이 극렬하였었고, 노서아에 있어서는 핀랜드합병을 단행하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이로 보면 조선문제도 그 당시 세계대세의 희생이 되었던 것도 일면의 관찰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입지에 있어서 동양 전국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역사 문화의 특수적 관계를 위하여, 또한 도래하는 세계적 인류문제를 위하여, 조선문제의 희생이 과연 득책이었을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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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구세기 벽두로부터 이십세기 벽두에 지하기까지 약 일세기간에 긍하여 격렬 신랄하던 열강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건곤일척의 구주대전으로 인하여 급전의 파탄이 생하였고, 또한 최후의 말로를 고하게 되었다. 대전의 책임에 대하여 연합국측과 동맹국측의 시비의 논쟁이 불일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만일 춘추에 무의전이라는 필법으로 엄정한 비판을 내린다 하면 그 실은 폭력으로 폭력을 대치하는 데 불과하였던 것이 대전의 진상일 것이다. 여하간 이와 같은 불합리한 살륙적 전쟁이 사·오년을 계속한 결과 기백억의 전비와 누백만의 생명을 수포와 같이, 초개와 같이 운소무산하여버린 구주의 문명은 최후의 파탄을 고하게 된 것이 과거의 사실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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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서 세계의 인류는 번민·회오·우수의 기회를 작하였었다. 이리하여 일면에 있어서는 폭로의 붕괴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레닌의 사회주의가 실현되었고, 타면에 있어서는 강독의 굴종으로부터 인도적 견지에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역사상 실례로 보아서 의례히 반동적 기분을 야기하는 것이 상사이었다. 이것은 물리학상으로도 실증할 수가 있다. 급전직하하는 물체가 도리어 공기의 파동을 수하여 최후의 요동을 야기하는 것과 하이가 유하랴.
    이른바 세계개조의 국제련맹의 최후의 구열이 생한 것도 사실이며, 또한 신흥의 적로를 적대하기 위하여 노령의 서백리아방면에서 연합의 군대가 출동하였던 것도 사실이 아닌가. 그러나 세계인류의 대여론·대리상에 기초한 주의와 실현은 결코 시간적 반동으로 저지할 수 없으며, 또한 무력적 제재로 억압할 수 없는 것이 역대의 사실이다. 이것은 지나간 십팔세기의 불국의 혁명사와 미국의 독립전이 오인에게 소소한 실증을 예시한 바가 아닌가. 전후의 사·오년 동안에 잔촉복명의 반동적 기세의 대두를 불구하고 인류의 대리상에 지하여는 조금도 저지할 바를 모르고 풍선의 순로와 같이 진전하여 가는 것이 현하의 대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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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민족운동에 있어서는 파이간반도의 다소제국의 독립을 비롯하여 파란의 독립, 애란의 분립이 계속 완성되었고 또한 인도의 비협동운동과 비도의 독립운동도 비록 운동의 도정에 있으나 그 기운과 형세가 갈수록 맹렬하고 확대되는 것은 불무할 사실이며,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대전란을 일경한 후 적로의 완성은 물론이어니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노동문제가 중심의 논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각국의 정계가 점차로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회전할 조징이 현저한 것은 현하의 대세가 아닌가. 그러므로 현하의 반동적 기분은 각국정계를 통하여 특권계급의 인습적 타력의 최후 발작에 불과한 것이요 결코 세계대중의 이상과 여론이 아닌 것을 이에서 단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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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구주의 전란으로 하여금 세계인류에게 대하여 기증한 바가 있다 하면 이것은 침략적 군국주의 붕괴일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군국주의의 쌍벽인 폭독 강로의 붕괴를 완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 군국주의의 신참견습으로 동양방면에 있어서 이르는 곳마다 조아를 현로하던 일본의 형세는 여하하였던가.
    구주대전 당시로부터 파리강화회의의 전후에 이르기까지는, 실로 일본의 전성시대이며 또한 득의의 추이었었다. 내정에 있어서는 전시무역의 성황으로 인하여 수입된 금화는 넉넉히 적년의 구채를 보상하기에 그 여유가 작작하였고, 외교에 있어서도 연합 동맹 양측의 염불급타의 기회에 처하여 동양방면의 세력부식에 자유자재한 활동을 득하였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물며 전승국의 일원으로 오대강국의 반열에 참가하여 종래로 동양방면에만 국한되었던 실제적 세력이 졸지에 구주정국에까지 유력한 발언권을 득하게 된 것은, 극동의 일소국으로 그 광영과 득의를 누구나 상상할 바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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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흥진비래하고 낙극생애는 인세의 상사이다. 대전당시의 이십일개조의 대중외교는 다만 중국인으로 하여금 절치의 한을 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열강의 시기 질시의 초점이 되었던 것이 아니냐. 또한 서백리아 출병은 다만 막대한 국비의 소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국주의의 선전을 제물에 완성하였던 것이 아니냐. 이리하여 영·미의 제휴로 화성돈회의가 개최되었고, 화성돈회의의 결과로 일면에 있어서는 국제외교의 금과옥조이던 일·영동맹이 파괴되었으며, 타면에 있어서는 군비제한으로 군국주의의 수족을 절단하게 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공전의 대진재는 일본으로 하여금 극도의 치명상을 여하였다. 근백억의 재화와 기십만의 생명이 초토의 오유에 귀하였던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하여 표면으로 동정을 선하고, 이면으로 미소를 발하였던 것이 과연 그 누구이었던가. 진재후 반개년을 불과하여 준열한 배일법안을 통과하고 계속하여 해군대련습의 고압적 시위운동을 연출한 것은 평소부터 극동방면에 호시탐탐하고 있던 미국이 아니냐. 과거의 전성을 회고하고 현하의 고위를 상기할 시에 과연 일본국민의 울분이 여하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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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일본의 내정은 여하한가. 재래로 군국주의를 유일한 신조로 신봉하는 일본사회는 세계적으로 군국주의가 붕괴되는 동시에 일대 공황이 기하였으며 일대 태풍이 습하였었다. 하물며 군벌파의 대중외교와 노령출병의 연차 실패로 인하여 국위 국재를 아울러 세계적으로 손실케 한 양대사건에 대하여 적년분억되었던 일반사회에는 반항의 기세가 일치하고 또한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인하여 사회주의의 수입이 가속도로 증가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리하여 중추를 잃은 일본의 사상계는 일을 축하여 악화 격화해 가는 것이 현하의 정태가 아닌가. 이에서 사상적 완화책으로 '보선'의 단행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보선의 단행으로 인하여 과연 어느 정도까지 사회의 안정을 득할 것인가, 이 곧 오인의 일괄목하는 바이며, 또한 보선의 실시후 일본의 정계에 적로의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하여질 것인가, 혹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그대로 적용될 것인가, 이 곧 일본의 운명을 결정할 분기점이 될 것이다. 여하간 이로부터 삼, 사년을 불과하여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일대변혁이 생길 것은 오인의 상상하는 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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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세의 조류는 확실히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방면으로 이동하여 오는 것이 과거의 사승에 조하여 소소력력한 사실이다. 만일 십구세기를 불란서문화의 확충시기라고 하면, 이십세기는 적로사상의 발전시대라는 것이 정당한 견해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범인 미국과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적로가 태평양을 격하여 양량상대하여 발흥되는 것은 과연 불원한 장래에 그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협조할까. 충돌할까. 이 곧 태평양상의 일말의 의운이 되어 있는 것은 불무할 사실이다. 세계대세의 운명이 이에서 결정될 것이며 또한 인류의 문화상 총결산이 이에서 감정될 것은 상상키 불난할 바가 아닌가.

    23

    그 중간에 처하여 제일 딱하고 애처로운 경우는 일본의 현상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일본은 국제적 중산계급이다. 거대한 자본을 포옹한 미국과 경쟁 발전하는 것도 실력이 불허하는 바이며, 그렇다고 적라라하게 세계적으로 난봉행세를 하는 적로와 제휴협조하는 것도 일층 위험을 감하는 바가 아닌가. 이에서 좌고우면 회오번민하는 것이 일본 현하의 정태인가 한다. 하물며 일면에 있어서는 미국의 자본적 제국주의는 일을 수하고 연을 수하여, 혹은 이민문제로 혹은 중국문제로 반목의 도가 가하며 충돌의 기가 촉진되는 것이 사실이며, 타면에 있어서는 일·노조약이 성립된 이래 경원적 태도로 외교적 사령이 호상교환되나, 입국의 기초와 주의가 근본적으로 불상용할 관계가 있는 이상에는 충돌의 위험성은 또한 불피할 형세가 아닌가. 이로 보면 사상적으로 자본적으로 좌우협공을 당하고 있는 일본의 형세는 실로 위란의 감이 불무하다.

    24

    그러면 구주열강의 동양정국에 대한 태도는 여하한가. 무어라고 하든지 구주의 중추세력은 독·불량국일 것이다. 양국의 역대적 감정과 전후의 형세가 상호견제와 현상유지에 급급한 이상에는 동양방면에 대하여 어느 시기까지는 활대진취의 활동을 취치 못할 것은 피할 수 없는 정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 지하여는 특수적 입장에 처하여 독·불 양국에 비하여 전후의 창이가 그다지 심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전통적 점진정책으로 동양방면에 대하여 불단한 주의와 시감을 행하는 것이 소연한 사실이 아닌가. 대전후에 바로 미국과 제휴하여 일·영동맹을 파괴하는 동시에 미국의 신흥기예의 세력을 아무쪼록 태평양방면에 집주케 하여, 일본의 충돌을 촉한 후, 도도이 어부의 이를 취하려 하는 것이 영국의 노활한 극동정책이 아닌가. 이것은 태평양상의 풍운을 예기하여 신가파 군항건설의 일건으로만 보아서도 개중의 소식을 규할 것이다.

    25

    이렇게 관래하면 미·노 충돌의 도정에 있어서 일·미 충돌이 전제가 될 것은 상상키 불난하다. 그러면 과연 충돌의 도화선은 나변에 재할까. 이 곧 중국문제이다. 만일 파이간반도가 과거 구주의 미와라 하면 이십세기의 중국문제는 확실히 동양정국의 일대위험일 것이다. 그러나 파이 간반도문제는 구주대전으로 인하여 불완전하나마 그 해결을 고하였거니와 중국문제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며 위험하다. 여하간 중국은 일대 미인이다. 그러므로 세계열강의 회장의 연과 추파의 정을 받는 것이다. 원래 미인 자체가 주동적 능력이 없는만큼 이를 완롱아수하려하는 음부 탕자도 많을 것은 사실이다.
    이리하여 질투도 생기며 투쟁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이 중국의 무한한 부원과 허다한 이권은 열강의 호투자처며 대발전지이다. 이리하여 영국의 추파가 되며 일본의 위협이 되며 미국의 수연이 되며 적로의 원조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중국의 현상은 여하한가. 아직도 민중의 각성이 철저치 못한 현하에 있어서 장·빙량파의 세력접촉점에 입한 단기서정부는 실로 풍등의 감이 불무하다. 그러나 민중에 따라서 자주배외의 운동이 날로 치열하여 갈 것은 확적한 사실일 것이다. 금번의 상해사건은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일영의 배척에 대하여 미국의 동정과 노국의 암조는 벌써부터 열국의 종횡암투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이로부터 삼·사년을 경과하면 적로의 내부적 실력이 충일하여 외부적 활동이 활발할 때에, 미국해군의 확장계획이 완성될 때에, 영국의 군항계획이 확립될 때에, 중국정계가 동요될 때에, 중국방면의 일점암운이 태평양상의 풍우를 대작케 할 것을 그 뉘가 보증하랴.

    26

    오인은 이상에서 조선내부의 사회적 변혁과 세계대세의 추이와 동양정국의 위기로 보아서 사·오년을 불과하여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풍운이 야기될 것을 논단하였다. 물론 주관적 속단일지는 알 수가 없으나 만일 과거의 역사가 현하대세의 산모며 미래의 대세가 또한 현재 사실의 파종이라 하면 결코 견강부회의 공론이 아니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나 다만 논점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어찌하여 복잡다단한 세계문제가 하시 사∼오년을 전후로하여 야기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오인이 사∼오년 전후를 예언하는 것도 결코 황당무계한 공상에서 입론한 것은 아니다. 대개 인간사회의 십년이라하는 시기는 개인으로나 국가로서나 일대계획을 입하여 준비와 조직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비교적 최요한 장기이다. 이러므로 월왕 구천은 십년의 성취로 인하여 회계의 치를 설하였고 의조의 이문성은 외적의 침입을 원려하여 십년의 의병을 주장치 아니하였던가.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일구일구년의 세계적 대전의 종식으로 일구이구년까지 곧 이로부터 사·오년만 경과하면 십년의 만기가 될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 대전의 종식으로부터
    그 동안 십년간에 그 사회 그 민족의 노력 여하에 의하여는, 피폐된 국력도 복활될 것이며 소심된 원기도 진작될 것은 물론일 것이다. 하물며 현하의 교통기관의 발달과 사상전파의 영향이 과거의 시대에 비하여 가일층 신속해지고 민활하여 시각으로 급전 격화하는 것이 현대의 특색이 됨에랴.

    27

    그러면 이와 같은 불원한 장래의 세계대세의 변동을 예상하고 또한 동양정국의 화란을 추단할 때에 가장 특수한 사정을 가진 일본과 조선의 관계는 여하히 진전될 것인가. 이 곧 오인의 중야경경에 장우태식하는 바다. 과거의 일본이 백종의 영국과 제휴하여 동양의 동색민족을 혹은 압박 혹은 위협함으로써 능사를 작하였던 것이 현하 동양정국의 화기가 아닌가. 만일 과거의 일본으로 하여금 당초부터 동양각민족의 공존공영의 원대한 계획을 책해 하였던들, 결코 현하의 일본자체가 고립의 위기에 처치 아니하였을 뿐아니라, 구주대전으로 인하여 파탄된 살벌적 문명과 피폐된 백색민족을 유도계발하여 세계개조의 인류의 대위업을 동양민족의 도율하에서 완성할 것이 아닌가. 이 어찌 천고의 한사가 아니랴. 그러나 과거는 과거인지라 추궁할 필요가 없거니와, 현하에 있어서 일본인사의 감상이 여하하며 소견이 여하한지 오인의 절문코자 하는 바이다.
    적어도 조선문제의 해결은 동양 전체문제 해결의 전제가 되며 또한 요건이 될 것은 물론이다. 왜 그러냐 하면 가장 민족적 관계가 밀접하고 문화적 은택이 막심한 조선민족을 유린압박하는 것은 아무리 일본민족의 전체의사가 아니요 수길·사내배의 군벌일파의 배은몰의적 행동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반만년 역사적 배경과 이천만 민중의 총명을 가진 조선민족으로서는 철골의 한이 될 것은 물론이 아닌가. 툭하면 일본인사중에는 이러한 말을 한다. 이조학정하에서 지내던 조선민족이 총독정치의 생명 재산의 안전보장으로 인하여 만족할 것은 물론이라 한다. 이것이 과연 일본인사의 조선민족에 대한 심리적 관찰이라 하면 오인은 영히 그 우치를 민련히 여길 뿐이다.
    현대의 조선인이 과거의 조선인이 아닌 것도 물론이거니와, 설령 이조의 학정이 현대에 재현된다 할지라도 조선인은 그 개혁을 절규할 것이 아닌가. 하물며 총독정치와 이조정치가 민족적 감정에 있어서 그 근저가 현수함이랴. 이것은 현하의 일본인민이 과거의 전제정치에 대하여 반항하던 경로를 회억하면 반성할 바가 아닌가. 둘째는 일본의 위정가로 하여금 조선문제 운위할 때는 반드시 국경경비문제와 사단증설의 필요를 역설하는 것이다. 과연 군등의 소견과 같다 하면 어찌하여 폭로·강독이 일전의 파멸에 불감하였던가. 여하간 조선문제를 그대로 두고는 중·일친선도 공념불이며 동양평화도 구두선에 불과할 것을 단언하는 바이다. 적어도 이천만 민중의 예리한 심 인이 일본의 약처급소를 수하여 기회대로 현로될 것은 현하의 정태가 아닌가. 이 곧 일본인사의 반성을 촉하는 바이다.

    28

    그러면 우리 민족의 세계대세에 처하는 포부와 조선의 장래에 대한 경륜은 여하할 것인가. 객관적으로 조선의 장래가 여하히 되리라 하는 것보다, 일보를 진하여 주관적으로 조선의 장래를 여하히 할까 하는 것이 주의의 초점이며 문제의 목표가 아닌가. 일언으로 폐하면 조선민족의 포부는 어디까지든지 웅위하여야 할 것이며 또한 어디까지든지 원대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조선의 동양 각민족에 대한 전통적주의와 방침이었으며 또한 우리 형제와 인도와 문화를 애호하는 유전적 천성인가 한다. 회고하여 보라. 북으로 중국의 인의를 존중히 하고 동으로 일본의 문화를 계발하여 항상 동양평화의 선구가 되며 또한 동양문화의 도율이 되었던 것은 시대적 사실이 오인에게 예증하는 바가 아닌가.
    왕왕히 수·당의 겁운과 일·청의 악몽이 있었으나 이것도 또한 조선민족의 자주적 살벌이 아니요, 외적의 만성 발작에 대한 정의적 제재이며 인도적 방위였던 것은 정확한 사실이다.

    29

    우리는 구미의 자유정신과 과학문명을 애호하는 바이다. 그러나 인국을 도탈하고 인혈을 흡취하는 수성만행은 어디까지든지 배척하고 구축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수성만습을 그대로 긍정한다면 인류사회는 결국에 강도의 발호에 불감할 것이며, 평화의 제단은 필경은 목축의 유린에 불과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적 정의와 인도적 평화의 유지발전에 대하여는 어디까지든지 민족적 의혈을 불사하여야 할 것이며 전국적 동원을 행치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설령 일본을 배척한다 하면 일본의 군벌일파의
    침략적 군국주의를 배척하는 바이며, 또한 적로를 친근한다 하면 적로의 평등의 정신을 애호하는 바가 아닌가.
    혹은 만일 동아의 풍운이 기하고 이리하여 일·미의 충돌이 생할 시에는 미국의 세력하에서 조선의 해방을 희망하며, 혹은 일로·일중의 충돌을 예기하여 노·중량국의 원조하에서 민족의 자유를 촉망하나 이것은 결코 조선민족의 전통적 정신에 배치될 뿐 아니라 우리의 양심이 또한 불허하는 바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에게는 자주적 정신이 있는 까닭이다. 자유는 어디까지든지
    자주적 행동이며 자력적 해결이 될 것이다. 결단코 타력적 원조와 사대적 사상의 지배와 용인을 불허하는 바가 아닌가.

    30

    물론 우리는 타민족의 인도적 동정과 정의적 원조를 불사하는 바이다. 그 뿐만 아니라 현하의 일본으로도 작비금시의 진리를 번연히 회오하고 자진하여 조선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단행한다면 우리는 결코 역사적 감정에 구니하여 배척할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닌가. 우리의 주의와 목표는 언제든지 민족적으로 자유·생존·평화의 삼대리상에서 그 출발점을 작할 것이요, 결코 증악·배척·침략적 관념에 지배될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첫째로 민족적 자유를 해결할 것이요, 둘째는 사회적 생존권을 보장할 것이요, 셋째로 세계적 평화에 노력할 것이 아닌가. 이 곧 조선민족의 웅위한 포부가 될 것이며 또한 원대한 경륜이 될 것이다. 거연히 소강을 지하고 동색민족을 박해하여 사리를 농하여 인류의 평화를 교란하려 하다가 최후의 파멸을 자초하던 노·독량국의 전철에 감하여 또한 이를 견습 모방하던 일본 문명의 파탄에 증하여 반성자오할 바가 아닌가.

    31

    우리가 이러한 포부와 경륜을 가지고 당래할 세계적 변국에 처하여, 어떠한 수련을 가하여 어떠한 준비를 행할 것인가. 두말 할 것도 없이 사상적 수련과 민족적 단결이다. 첫째로 우리의 사상계는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정리하여 통일하는 데 있어서는 조사와 비교와 연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며, 둘째로 이렇게 정리통일이 된 사상하에서 중심적 단결을 작성하여서 우리의 일빈·일소와 일동·일정이 단결적 배경에 의하여 발하며 행하게 되는 것이 현하 급무가 아닌가. 여하한 명배우라 할지라도 무대가 없으면 교기절예를 연출치 못하는 것과 같이 인류는 단체적 배경과 사회적 토대가 없으면 그 천재와 재능을 발휘치 못할 뿐만 아니라, 여하히 웅위한 포부와 원대한 경륜을 가졌다 할지라도 활천의 노가 절할 것이며 실현의 일이 무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오인은 외세의 파동보다 타력의 원조보다, 중심세력의 확립과 자체세력의 해결을 절규력설하는 바이다. 요컨대 조선문제는 민족자체의 단합이 확립하는 그날로부터 해결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