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제2권 12호 (1926년 12월호)

눈발을 부르는 무악재 바람이 쌀쌀히 불어온다. 그 바람 고지에서 떨고 있는 시커먼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우리 부자유한 언론의 희생자 두 동지를 송영하게 되었다. 하나는 조선일보 필화사건의 희생자인 동지 인쇄인이었던 김형원군의 형기사개월을 마친 출감이오, 또 하나는 동아일보 필화사건의 희생자인 동지주필 송진우군의 육개월의 체형을 받은 입감이다. 우리는 그 출감을 경하하여야 할는지 그 입감을 섧다하는가 위로하여야 할는지 나의 둔필을 옮기기에 자못 주저치 않을 수 없다. 그러면 희생자 자신들은 출감을 기쁘다 하는가 입감을 그 또한 알아보아야 할 일이다. 이제 나오고 들어가는 이들의 기탄없는 감상을 소개하여 보자.

감옥으로 들어가면서 - 송진우

노농 노서아로부터 조선민중에게 보내는 전문을 동아일보에 역재한 것이 내가 금회 입감하게 된 필화사건인 것은 세상이 주지하는 일이라 이제 새삼스러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해전문의 원의가 목하나 또는 미래를 운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별로 구애될 것이 아닐 줄 믿고 다만 신실히 보도할 뿐이었는데 그것이 소위 보안법 위반이라는 죄가 되어 사법처분을 받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수긍키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편에서도 어디까지나 법에 의하여 다투어 보았으나 결국 상고심에서까지 패소를 당하였으니 이제는 항거무로라, 형을 수치 아니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찍이 이십사개월의 감옥 경험이 있으니까 이제 새삼스러히 옥고를 놀랄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감옥을 형무소라 개칭한 이후 내부에도 많은 개선을 하였다니까 증왕보다도 오히려 지내기는 낫겠지요. 수인생활의 제일 어려운 동기에 입감케 된 것은 육체를 위하여 좀 불행한 일이나 그역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더 싸워볼 여지 없이 그만 수인생활에 들어가려고 각오를 하고나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에게는 다행한 점도 있습니다. 한동안 험악한 세파에 부대끼고 난 심신을 그윽히 위로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산만한 정신을 수습하여 수양함에는 인간사회와 별교섭이 없는 옥사라도 좋습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사회가 안 그러리까마는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분규와 반목이 많습니다. 동족끼리는 물론 심하면 동지간에도 서로 중상과 비난을 일삼는 예가 또한 적지않은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 높디높은 붉은 장벽너머의 벌려있을 차생지옥의 광경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나지마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골머리 아픈 우리 사회로부터 그윽한 피난처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우리 사회의 어떤 일부에서 무슨 비난을 받고 있었다면 이번 입감은 그 비난을 완화 혹은 소멸케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심신수양기 또는 어떤 의미로의 은거기인 반년이라는 수형기를 가장 의미깊게 보내고 나오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