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해] (1937년)

독서는 인생의 양식이다.
독서를 모르는 사람은 오늘의 세상에서는 아무런 존재조차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양식으로서의 독서도 퍽이나 즐겨하지만 그저 어쩐지 '책'이라면 무조건하고 사랑하고 싶어하는 근성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듯싶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 책에 애착을 두는 마음은 내 머리에서 언제든지 떠날 듯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타고난 이 천성은 자주 주위에 벌어지는 많은 장해에 부딪치는 때가 많이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더한층 독서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과 씨름하여온 몸이다. 아직도 벌거숭이 육, 칠세에 엄부의 슬하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종아리를 맞아 가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한시도 '책'과 멀리한 때가 없다.
책과 사귀이기 오십년간, 나로서는 비교적 광범위의 서적을 뒤적여 보았었다. 재학시에는 원체 법률과를 전공하였더니 만치 법학에 대부분의 힘을 기울였던 것은 사실이나 자연과학 수양서적등에 이르기까지 이모 저모로 여러 방면의 책을 보아온 셈이다. 그중에는 머리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뜻깊은 구절도 많이 있고 내 심금을 울리던 위대한 어른의 말도 많이 있었다.
이제 조용히 앉아 독서 오십년간을 돌이켜보면 대체 네 갈래로 구분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 어려 한문학을 공부하던 때일 것이다. 이때에는 공맹의 유교사상과 사략 등 지나사에 관한 것들을 읽었으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몰비판적 무저작적 독서방법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모든 부문의 독서는 이 한학수업의 첫 과정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고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도 가끔 새삼스러우리 만치 깨닫게 됨이 사실이다.
둘째 = 학교시대인데 중학시대부터 나는 특히 역사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시간도 있지마는 교과서 이외의 역사서적에 많은 힘을 기울였었고 대학시절에는 법학을 전공했던 관계로 법률서적을 주로 보아 왔지마는 사학에도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밖에도 문예서적을 또한 숙독하게 되어 톨스토이의 <인생>, <전쟁과 평화> 등은 아직도 숙독하던 그때의 일이 기억에 새로운 바가 많다.
셋째 = 재감시대를 말하게 될 것이다.
이 시기가 나에게는 가장 조용히 독서에만 마음을 쏠릴 수 있던 시기였다. 또한 머리를 가다듬고 사색과 숙고를 거듭해 볼 수 있었던 때도 이 재감시대라고 하겠다. 이때에 나는 비로소 커다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종교에 아무런 지식도 못가졌던 나는 처음으로 기독교와 불교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될 기회를 얻게 되었었다.
불경을 통독하였고 구약전서와 신약전서를 모조리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아직까지 밟아보지 못한 미개의 땅을 비로소 개척하는 듯하였다.
넷째 = 그뒤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인데 역시 현재의 생활이 생활이니 만치 여러 방면의 서적을 많이 보게 되지마는 주위의 바쁜 일로 말미암아 독서할 틈을 비교적 많이 얻지 못하는 것이 최근의 사정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틈만 있으면 수양서적도 자주 뒤져보지마는 사학도 펼쳐보게 된다. 그밖에 월간 잡지와 신문 등은 조선에서 나오는 것이나 동경방면에서 나오는 것은 대강 제목만이라도 훑어보게 되고, <중앙공론> <개조> 등은 비교적 매월 손에 쥐어보게 된다. 나는 오늘날까지 책과 벗삼아오는 동안 지식의 무궁함을 깨닫는 동시에 '책'이란 얼마나 우리 인류문명에 커다란 존재인가 함을 느끼게 된다. 모든 책(서적)은 문명의 모태이다.
문명에로 한걸음씩 달음질치는 오늘의 인류로서 어느 누가 독서를 멀리할 것인? 책을 사랑하는 마음, 이는 인류생활에 있어서 가장 갸륵하고 아름다운 심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