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송진우 선생의 생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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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경 : 고하 송진우와 인촌 김성수
1919년 : 3.1운동을 도모한 중앙학교 숙직실 (현 중앙고등학교 3.1기념관)
1919년 : 중앙학교 3.1운동 책원지 표석 (1919년 3.1운동을 도모한 숙직실 터)
1922년 3월 18일 : 중앙고보 제1회 졸업식에서, 왼쪽부터 김성수, 최두선, 송진우, 현상윤선생 (동아일보)
1926년 9월 8일 :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월의 선고를 받았다.
이때 신분은 상민, 직업은 신문기자로 기록되어 있다.
1929년 : 교토 제3회 범태평양회의 참석 (왼쪽부터 백관수, 송진우, 윤치호, 유억겸, 김활란)
1931년 : 브나로드운동 포스터
1936년 : 손기정선수 일장기 말소 사진
1937년 9월 : 모리스 마텔 프랑스 영사와
1945년 12월 : 피습 수일 전 동아일보 정문을 나서는 고하
1945년 12월 30일 : 고하 암살시 침실에 쳤던 병풍(핏자국이 보임)
1945년 12월 30일 : 고하 암살현장 원서동 자택 사랑채